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은 무려 9남매를 낳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슬을 과시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의 허락없이 옷 한벌 입지 않았다." 라고 할정도로 깊이 의존했으며
앨버트공 또한 여왕의 남편으로서 모든 대내외 역할을 모범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했다.
심지어 부부 싸움을 했을때
(주로 빅토리아 여왕이 소리치고 앨버트공이 도망침)
빅토리아 여왕이 사죄하러 찾아오면 바로 문 열어 주지 않고
"영국의 여왕입니다."
"빅토리아입니다."
"당신의 아내입니다."
까지 말해줘야 문을 열고 그녀의 사죄를 받아주었다고 한다.
앨버트공의 사망으로 정신을 놔버린 빅토리아 여왕 이렇게 잉꼬부부를 자랑한지 21년째 되던 날... 안타깝게도 1861년 12월 앨버트공은 장티푸스로 사망하고 만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에 깊이 절망한채 윈저성에 은거하고 모든 공무를 놔버렸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모든 공무는 여왕이 싸인해야 최종 승인나기 때문에 의회의 계속된 설득과 시민들의 반발 때문에 다시 공무에 나서게 된다. 다만 이때부터 빅토리아 여왕은 모든 공식 석상에 검은 상복을 입으며 남편을 기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01년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